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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의 저자가 항상 '우리 we'인 이유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과학

.뿡뿡 2021. 12. 2. 00:28

『서울 리뷰 오브 북스』0호 창간 기념으로 열린 줌 세미나에서 천문학자 심채경에 대해 알아봤다. 나로서는 쟁쟁한 선생님들 사이의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그날 세미나가 좋았던 것은 그의 발성 덕분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다채롭게 보는, 입체적으로 보는, 낯설게 보는 것이 키워드였던 그의 발제는 대체로 다른 생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소설 지월의 표지에 초승달이 초승달로 표현돼 있어 몰입하지 않거나, 어떤 음악을 들으면 나만의 포인트에 즐겁게 반응할 것으로 기대돼 전주부터 몸이 들뜬다는 얘기를 좋아했다. 아니 사실은 그 말을 하는 그녀가 좋았다. 그녀는 그것이 얼마나 흥미롭고 설렜는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은 그녀를 빛나게 했다

신간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발견했을 때 들떴다. 천문학자 별이라는 키워드는 나와는 거리가 멀지만-심채경이라는 세 글자가 그 모든 것을 상쇄하고 나를 책 앞으로 끌어당겼다. 역시 책은 재미있었다. (세미나에서 들었던 지즈키 이야기도 책 속에서 다시 만났다. 길지 않은 세미나였지만 매우 내게 강한 자극이었던 그 시간은 이 책 전체를 그녀의 육성으로 대체해 주었다.

이 책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는 두 세계가 공존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하나는 그녀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의 몇 안 되는 천문학자(행성연구자)이자 두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는 유일무이한 존재여서 오늘이 힘들고 또 오늘이 뿌듯하다. 이 연구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서를 쓰거나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하면서도 그런 걸(?) 해본다. 그렇게 바라본 세계에는 22억년 전에 보내온 빛이 있다든가,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있는 것이 확실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렇다. 그녀의 인생에는 정해진 답이 없는 빈 칸이 아주 많았다. 한국 우주 연구는 지난 10여 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여전히 대중의 관심은 미약했다. 로켓 발사라도 하면 잠시 주목을 받을 뿐! 아, 그러고 보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 선수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삶도 천문학자로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알아, 알아, 일하고 공부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란 말은 수없이 들었겠지만 진심으로 엇갈리는 말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그래도 좋았던 건 - 그녀가 외로워 보이지 않아서였다. 한국에는 몇 안 되는 천문학자지만 세계에는 그녀와 함께 별을 좇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밤하늘을 관측한 사람들은 자료를 보내며 enjoy!라고 인사말처럼 쓴다. 데이터 중에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르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사람들. 설령 무언가를 발견한다고 해서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르는 것도 아니고, TV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꾸는 영향력을 가진 것도 아닌, 그런 것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본문 13쪽)이 그녀의 공동연구자다.

과학논문은 늘 저자를 우리 we라고 칭한다. 물론 과학논문은 여러 공동연구자가 함께 내용을 담기 때문에 우리라고 쓰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학위 논문이다.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의 저자는 당사자 한 명이지만 그래도 논문을 쓸 저자를 자칭할 때 '우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학위를 딴 지 한참이 지나서였다.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며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래서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 항공우주국 연구원이나 미국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다. 거기까지 공을 들인 우주탐사 자료를 전 인류와 나누는 아름다운 전통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나 구름 너머의 세계를 상상했다. 아는 것이 없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너무 하얗거나 너무 까맣지만-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어떤 세계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 같다. 새로운 상상의 지평을 열어준 그녀에게 감사하고 싶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 그녀의 강의를, 혹은 세미나를, 다른 형태의 무엇이든 다시 들어보고 싶다. 심채경이라면, 미지의 영역인 우주도, 타이탄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우주를 일컫는 단어가 다양하다는 것도 비로소 깨달았다. 저자는 유니버스 universe, 코스모스 cosmos, 스페이스 space를 이렇게 구분한다. 한국이 은어 성단이니 뭐니 할 때 쓰는 우주는 유니버스다. 별과 먼지와 행성, 우리 생명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 상황과 환경이다. 코스모스는 질서와 조화 측면에서 바라보는 우주다. 그 우주에는 질서와 조화가 있다.칼 세이건의 대표작이 코스모스인 것도 우주의 질서와 조화, 우주라는 대자연의 작동 원리를 논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자판에도 있는 스페이스는 공간으로서의 우주다. 특히 인류가 인공위성이나 우주선과 같은 인공물체를 보내 탐사하는 공간을 말한다. (본문 중 40-41페이지)

2. 조선왕조실록이 천문학을 연구하는데 주요한 자료가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조선 태조 원년인 1392년부터 철종 때인 1863년까지 470여 년간 국가주도 아래 체계적으로 왕을 넘어 역사 자체에 충성하는 사관들이 남긴 지구상의 유일무이한 기록에는 하늘과 자연의 현상도 담겨 있었다. (눈이 '몇 치'나 '팥' 또는 '계란' 정도의 우박이 내렸다고 적고 있다) 지구 기후 변화의 관점에서 보면 조선시대는 13세기 초부터 17세기 말까지 지속된 소빙기와 상당 부분 겹친다고 한다. 빙하기까지는 아니지만 꽤 추웠던 이 시기에 한반도에서도 한여름에 우박이 내렸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다고 한다. 같은 지구상에 살아왔으니 동서양의 천문기록이 겹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나로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3. 제5도살장을 읽는다 그의 동물원 이야기 때문이다.

4. 우주에 대한 노래가 이렇게 많다는 것도, 우주인들이 들을 음악 목록을 미리 정해 놓았다는 것도 이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됐다. 2024년 달로 향하는 미국 우주인들은 우주선 안에서 방탄소년단을 듣게 된다는 것도(소우주 문차일드 134340)이 플레이리스트에 올랐다고 한다. 이 중 134340은 명왕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